1947년은 금세기 성서 고고학계에서 최대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사해사본’이 발견된 해이다. 그해 5월 한 베두인(Bedouin) 소년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염소를 찾으러 갔다가 한 동굴을 발견하고 그 동굴 속에서 7개 두루마리의 성경사본을 찾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1951년부터 1956년까지 6년간 고고학자들은 쿰란(Qumran) 주변 약 270개의 동굴들을 샅샅이 발굴했다. 11개의 동굴에서 약800개의 두루마리 책의 일부 혹은 작은 조각들을 발견했다. 이 800여개의 두루마리 중 50%정도가 성경사본이었다. 11개의 동굴 중 1, 4, 11번에 가장 중요한 자료들이 있었으며, 모두 베두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은 1008년에 레닌 그라드에서 번역된 성경 (맛소라 텍스트: A.D 500년경 발견)인데,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은 BC 20년에서 AD 100년 사이에 쓰여진 책이었다. 이 둘을 비교해본 결과 레닌그라드에서 쓰여진 책과 90%가 일치했다. 기독교의 뿌리와 정통성을 확인시켜 준 사본이기 때문에 쿰란사본은 어느 책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함께하는’, ‘하나되다’는 의미로 야하드라 불렀던 쿰란 공동체는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에세네파 사람들로 서기 68년, 로마군대가 쳐들어오자 두루마리 구약성경과 종교 문헌들을 항아리에 넣고 근처 동굴들에 숨겨 놓았으며, 사해 사본이 갖는 중요성은 오늘날 성경의 원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성서 연구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해사본은 현존하는 구약 사본으로는 최고의 사본이며, 구약성서 연구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